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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치

정치인 안철수와 단일화

by 필리브 2022. 2. 22.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 종결을 선언했습니다.

안철수 후보 스스로 단일화 제안을 한지 일주일 만입니다.

안 후보는 단일화의 문을 닫았다고 했지만 문은 아직 닫히지 않은 듯합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까지 러브콜을 계속하고 있고요.

국민의당 관계자들 멘트를 보아도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죠.

단일화 국면을 통해 개인적으로 떠오른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현상의 이면을 생각하며 이유를 적어보려는데 대체로 추측의 영역이니

가벼운 소설을 보듯 마음 편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철수는 왜 선거마다 단일화 이슈가 생기는 걸까


정치인 안철수는 시작부터 단일화가 화두였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 방송인 김재동 등과 함께 한 청춘콘서트, MBC <무릎팍 도사> 등으로 대중 인지도와 호감도가 올라간 안철수는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와 함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당시 안철수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종인 전 의원 등 정치 원로들과 만나며 정치인이 되기 위한 사전 작업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여건 때문(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에 안철수는 본격적인 정치 참여 선언을 다음으로 미룹니다. 서울시장 후보 자리도 박원순 당시 변호사에게 양보했습니다.

일반적인 단일화는 아니지만 양쪽 후보 중 한쪽 후보가 출마를 포기하고 다른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는 점에서 단일화로 부를 수 있을 듯합니다.

 

안철수
출처 : Wikimedia Commons

                                                                                 
2012년 9월에는 정치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새정치'를 내세웠지만 곧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와 단일화 정국에 돌입합니다.

안철수 후보는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역사를 거스르는 세력'으로 규정하며 그들의 정치적 확장을 반대했기 때문에 야권 단일화는 예정된 수순과도 같았습니다.
단일화 정국에서 상황은 안 후보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지지율은 역전되고 단일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단일화의 물리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 후보는 갑자기 출마 포기 선언을 하며 소극적 단일화를 했습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야권 단일화에 나섰지만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정치인 안철수에게는 세 번째 단일화였지만 처음으로 룰 합의를 해 결과를 본 단일화였습니다.

안철수가 선거마다 단일화 이슈에 빠지는 건 제3지대 후보라는 태생적 조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게 말해서 한국의 유권자 지형은 보수 40%, 진보 30%, 중도 30%(혹은 보수 30%, 진보 30%, 중도 40%)라고 합니다.
보수나 진보의 충성도는 비교적 높아서 선거 때 투표로 연결이 되지만 중도는 다릅니다.

중도 유권자들은 응집력도 떨어지고, 선거별 사안별로 각자 판단에 따라 후보를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보수 후보는 40 중 30~35를, 진보 후보는 30 중 25를 가져갈 수 있지만 중도 후보는 40중 20을 얻을 수 있을지 10을 얻을지 모를 일입니다.

특히 '이길 후보에게 몰아주자'는 투표 심리까지 겹쳐지면 제3지대(중도) 후보의 공간은 더욱 줄어듭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보수·진보 성향 유권자와 중도 성향 유권자의 투표 결집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한국갤럽의 가장 최근(2022년 2월 3주, 15~17일) 대선 여론조사를 보겠습니다.

민주당 지지자의 83%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고, 국민의힘 지지자의 88%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 의향을 나타냈습니다. 반면 국민의당 지지자 중에선 58%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찍겠다고 답했습니다.

투표성향별로는 보수 유권자의 69%가 윤석열을, 진보 유권자의 63%가 이재명을 선택했지만 중도 유권자는 15%만 안철수에게 향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사회적 신드롬이 불었던 2012년 대선에서도 안철수 후보가 다자구도에서 1등을 한 건 극히 일시적이었습니다.

보수, 진보 각각에서 지지기반이 확고한 양당이 버티고 있는 한 안 후보가 다자구도로 선거에서 이기기는 힘듭니다.
양당 중 어느 한 곳과는 힘을 합쳐야 당선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선거마다 안철수에게 단일화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안철수가 단일화 질문을 받으면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


안철수 후보는 언제 어느 때 단일화 질문을 받아도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국가비전, 정책, 미래 과제 등을 꺼내는 게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지난 2월 8일 관훈토론회에서도 단일화 질문에 관심 없다고 했지만, 불과 닷새 뒤인 13일 윤석열 후보에게 단일화 제안을 했습니다.

단일화와 같은 파괴력이 큰 문제를 고민 없어 어느 순간 바로 꺼내들 수는 없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며 타이밍을 찾고 있다가 제안을 하는 게 상식적인 순서일 겁니다.

안 후보의 "관심 없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에게 단일화는 어쩌면 선거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고 고민할 법한 문제입니다.

선거가 시작되면 자의든 타의든 단일화 이슈에 휩싸이게 될 테니까요.
그럼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선 단일화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 자체를 곤혹스러워합니다.

왜일까요.

정치한 지 10년이 지난 안철수는 더 이상 '새정치'라는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새정치는 다른 단어들로 치환됐습니다.
새정치 대신 '기득권 정당'의 모순을 지적하거나 '거대 양당'의 폐해를 거론합니다.
그런 그가 기존 정당과 단일화를 한다고 하면 그동안 해온 비판은 모두 허공에 뜹니다.

그동안 잘못됐다고 부르짖었던 상대와 손을 잡는 격이지요.

 

평소에는 거대 양당의 구조를 공격하다가
선거 때가 되면 그들 중 한 곳과 단일화를 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단일화 이슈가 한 번 떠오르면 다른 모든 이슈를 삼키는 것도 곤혹스러울 겁니다.

세력이 없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내세우고 싶은 장점은 인적 콘텐츠일 겁니다.

안랩 CEO 출신으로서 과학 기술 이미지, 대학교수 출신으로서 교육 비전을 내세우고
한편으로는 보수적 안보관을 내세워 '합리적 보수'와 중도에게 어필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단일화 이슈가 한 번 생기면 가는 곳마다 단일화에 대해서만 물어봅니다.
그가 장점을 보일 기회는 없어지고, 00당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안철수만 남게 됩니다.
단일화 과정이 진행될수록 안철수가 가진 후보로서의 힘이 빠지고 지지자들은 이탈하게 됩니다.

반복된 단일화 과정에서 기존 정당의 무서움도 알았을 겁니다.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가 양당 후보를 누르고 단일 후보가 된 적은 없습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기존 정당들이 그런 상황을 필사적으로 막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존 정당 입장에서 대선에서 후보를 못 내는 상황이 오는 건 아찔할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당의 존립 근거가 흔들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2012년 대선에서 단일화 국면 초기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지지율이 뒤졌습니다. 그때 민주당은 안 후보의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지지율 역전이 되자 민주당은 다시 여론조사 방식으로 말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협상에서도 경쟁력이냐 적합도냐를 두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경쟁력은 안철수가 적합도는 문재인이 우세하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문 후보 측에선 "3자 대결"로도 갈 수 있다면서 압박전술을 썼고, 결국 안 후보가 물러섰습니다.

이런 모든 요소를 고려할 때 안 후보는 단일화에 대해 3가지 원칙을 세우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1) 단일화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철저하게 부인한다.
2) 단일화 시기나 방식은 내가 주도적으로 정한다.
3) 단일화 과정은 최대한 짧게 끝낸다.


기존 정당들에게 단일화는 올가미 전략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 단일화를 살펴봤으니 기존 정당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기존 정당들은 이중 포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입니다.

안철수 지지율의 일부를 흡수하면서 접전 양상의 선거라면 확실히 승기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10% 내외의 지지율을 보여줍니다.

이 중 절반만 가져와도 기존 정당 후보는 5% 포인트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선거가 막바지까지 양당 후보의 접전으로 전개되면 안 후보의 단일화 몸값은 더욱 올라갈 겁니다.

캐스팅보트를 쥐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포석은 단일화 성사와 무관합니다.

내가 설령 삼킬 수 없어도 독을 뿌리는 전략이라고 할까요.
단일화 이슈를 띄워 놓으면 안철수는 '단일화할 후보'가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장점은 모두 희석되고 단일화를 언제, 누구와, 어떻게 하냐에만 관심이 쏠립니다.

이번처럼 지지율 격차가 크면 안 후보는 '찍을 필요가 없는 후보'로 이미지 전환이 됩니다.

안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상당수는 양당 후보 중 한 후보를 선택하거나 투표 포기를 하게 될 겁니다.

기존 정당 입장에선 변수가 많은 다자구도보다 안정적인 양자 구도가 싸우기 편할 겁니다.

 

안 후보가 단일화 이슈라는 견제를 받지 않고 선거 막판까지 위협적 지지율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을 해보죠.

선거 막판 안 후보의 선택에 따라서 선거 결과가 달라질 겁니다.

양당은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도 두 번째 포석이 기존 정당에게는 더 매력적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안철수가 지지율이 하락한 후 단일화 제안을 한 이유는

 

단일화가 안철수 후보에게는 자기부정의 요소가 있는,

그래서 부담스럽지만 승리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전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거대 양당의 입장에선 견제책으로 활용하기 좋은 도구라고도 했고요.

 

이런 구도를 보면 안 후보가 스스로 단일화 제안을 한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갤럽 20대 대선 후보별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
한국갤럽 대선 후보 지지도(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483호)

 

시점을 살펴볼까요.

단일화 제안은 2월 13일 이뤄졌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1월 중순 2주간 지지율이 17%까지 도달했지만 이후 추가 탄력을 받지 못하고 내리막을 탔습니다.

1월 마지막 주(25~27일) 조사에서 15%, 2월 첫 주(8~10일) 조사에서 13%이었습니다.

안 후보는 하락기에 단일화를 제안했습니다.

 

이를 두고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늦었다"고 했습니다.

"17%까지 지지율이 올라갔을 때 제안을 했어야 옳았다"고도 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안 후보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여론조사가 상승 중일 때 안 후보가 단일화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요?

주식이 한참 오를 때 팔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단일화는 안 후보에게는 장점을 갉아먹는 부정적 수단입니다.

상승 동력을 스스로 꺾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안 그래도 지지율이 두 자릿수에 다다른 시점부터 언론은 안철수에게 단일화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단일화 이슈는 이미 시작됐지만

그 스스로 뛰어들어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또 하나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추이도 중요합니다.

한국갤럽 기준 1월 초 이재명은 윤석열을 10% 포인트 격차로 앞서기도 했지만 1월 중후반부터는 접전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일화 몸값은 단일화하려는 후보가 상대 후보보다 지지율에서 뒤지거나 접전을 펼칠 때 올라가는 게 당연합니다.

1월 마지막 주 이재명-윤석열은 35%로 동률이었고, 2월 첫 주 윤석열(37%)은 이재명(36%)을 불과 1% 포인트 앞섰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지지율이 정점을 지난 게 분명했고(언론의 관심도 식어가서 단일화 이슈로라도 조명받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단일화 파트너인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와 초접전을 펼치고 있는 시점에 단일화를 제안했습니다.

언제가 최적의 시점인지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13일은 단일화 제안을 하기에 적당한 시점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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